|
젬젬
|
2004-12-20 18:54:29, 조회 : 614, 추천 : 125 |
모란꽃 다섯 송이가 새겨진 어머니의 은비녀를 내가 간직하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스무 살 고운 새댁 때부터 수 십년의 세월동안 어머니의 쪽진
머리와 늘 함께 했던 은비녀는 검은 비로드 천에 곱게 쌓인채 내 서랍 속에 있다.
지금의 내나이쯤에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원하지도 않던 가장이 되신채
쪽진 머리카락 수 만큼이나 힘든 일을 이겨내시며 살아야 했던 날들.우울한
영화 같은 이야기를 어찌 글로 다 쓸수 있으랴.
어머니가 환갑을 넘기셨을 무렵 언니와 난 어머니께 간수하기 좋게 커트머리를
하시라고 누차 말씀 드리면 일 없다며 한마디로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어머니 생의 전부인 양 아침마다 굽은등 펴고 앉아 윤이 나도록 닦고 앞가르마 반듯하게
타서 쪽을 짓고 은비녀를 꽂으시면 하루 일과 중에 제일 첫 번째인 일을 마무리 하신 것 처럼
느껴질 정도 였다.
살아가는 세월이 녹록치 않을 때마다 반듯한 가르마는 삶의 바른길 같았고 한줌도
못되는 머리는 어머니의 자존심이며 어머니를 지키는 아버지의 사랑 같았다.
라이락 향기도 차츰 엷어져 가던 오월 어느 날 .
어머니는 머리를 자르고 우리 집에 오셨다. 너무도 낮설은 할머니로.
스무살에 쪽진 머리를 아니 칠십년이 넘도록 한번도 자른적이 없었던
머리를 자르시며 얼마나 많은 표현할수 없는 회환을 느끼셨을까 생각하니
울컥 목이 메어왔다.
손수건에 곱게 싼것을 풀어 놓으시며
"너의 아버지한테 은가락지와 함께 받은 유일한 패물이다"라며 별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혼불 같았던 은비녀를 나에게 주고 싶으셨다며 잘 간직 하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눈가엔 이슬이 맺히는 걸 보고 난 애써 외면했다. 스무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고 엄마 냄새가 배어 있어 내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어머니가 주고 가신 은비녀를 가슴에 안고 난 아무도 없다는 핑계를 삼아 마음 놓고 아니
어머니의 예쁘지 않은 삶을 원망하며 울었다.
언젠가 농담 처럼 "엄마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만나면 아버지가 엄마 못 알아보면 어떻해
젋었을적 쪽진 엄마만 기억할텐데" 했더니 쓸쓸한 웃음만 짓던 모습은 내게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남겨 두셨다.
가끔씩 친정에 다니러 가면 눈이 어두워 지셔서 "엄마, 나왔어" 하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막내딸인
줄 아시는 어머니.
아직은 모란꽃 은비녀와 어머니가 내겐 함께 하지만 어머니 가시고 나면 모란꽃 은비녀는
엄마와 함께 했던 그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수 있을까?
2003년가을호 수필춘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