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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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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19:00:13, 조회 : 623, 추천 : 130 |
살갑지 않은 바람이 불어대며 겨울 채비를 서두르게 만드는 12월 초순 집을 나섰다.차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한 여름을 이겨낸 후 긴 휴식에 접어들어 쓸쓸한 것 같으면서도 평화롭게 보인다. 아스라이 멀어지다 또 나타나는 먼 산이 바람소리처럼 따라 오는 것 같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은 제자리에 멈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며 달아나는 그림자까지 길 위로 길게 눕혀 놓는다. 초겨울의 아침 햇살이 간밤의 무서리 꽃을 끌어 앉듯 양지 바른 곳은 질척하게 녹여놓았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흔들리며 피지만 날선 칼바람 앞에 내놓고 싶지 않은 겨울꽃이라 초겨울 햇살은 서둘렀는가보다.
불영사를 가기로 목적지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어느해 여름동해안을 여행하다 불영계곡 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다. 늦게 도착한 탓 도 있었지만일행이 있어 아쉬움을 접고 돌아선 기억이 늘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 언젠가는 다시 가보고싶다는 바렘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내 마음을 들여다 본 것처럼 남편이 불영사를 가자고 했을때 아이처럼 좋아라 하며 따라 나선 길이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을 했건만 짧은 겨울해는 시간을 오래도록 걸어두지 않는다. 벌써어둠이 스멀스멀 땅 위로 내린다. 여행의 묘미는 낯선 곳의 풍경을 보는 것도 좋고 푸짐한먹거리를 찿아 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찰을 들러 보려면 이른 아침시간이 가장 좋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이른 시간에 움직이기로 하고 하루 일정표를 만들었다. 새벽공기가 뼈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차다. 깊은 산중 이란 것이 실감이 난다. 싸늘한 새벽 공기에 채 가시지 않은 어둠이 밀려 나는지 차가 가는대로 훤하게 밝아 오는 것이 보인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 근무 하시는 분이 출근을 하지 않아 차속에서 기다려 야 했다. 입장료을 내고 아무도 가지 않은 하루의 첫길을 우리가 걷는다고 생각하니 즐겁다.
사분사분 흙 길을 따라 걷다보니 넓은 개울가에 놓인 다리가 나타난다. 언제부터 흘렀는지 모를 물이 그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다. 문득 불교에서 말하는 輪廻라는 것이 생각난다. 인간의 사후는 어떤 형태로는 존속 한다는것이 輪廻인데 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도 業을 따라 흐르는 물이 되였을까? 궁금해진다. 작은 언덕을 내려서니 양지바른 곳에 고즈녁한 천년고찰이 어서 오라는 듯 반겨 준다. 도솔천을 지나 내원궁에 다달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 그 다리 아래로 흐르던 물 때문에 그런가 보다.
"佛影寺" 신라 진덕여왕 5년에 의상대사가 이곳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하다 하여 산 이름을 천축산이라 하고 큰 연못에 있는 아홉마리의 용을 주문으로 쫓아 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구룡사라고 하였으나 그 후 서쪽 산위에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추어 佛影寺라 바꿔 불렀다고 한다. 조선태조 5년에(1396년)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소운 대사가 중건하고 그 후 또 화재를 당해 연산군6년(1500년)양성법사가 중건 했고 선조41년(1608년)경종(1724년)고종 광무년(1899년) 에도 중수를 하였다는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어찌 풍파가 없었을까. 오랜 풍상을 이겨낸 흔적이 곳곳에 배여있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기단 밑에 거북돌을 끼워 건물을 받들게 한 것이 눈에 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 한 가지가 더 느껴진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수 많은 전각들이 수호신처럼 세워졌다. 경북문화재 제135호인 삼층석탑은 해묵은 이끼 처럼 오래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하다.
법당은 수행중인 스님 여러분이 청소를 하건만 흐트러짐 없는 매무새와 소음이라곤 이따금 법당 문을 스치는 바람이 놓고 가는 소리와 삼라만상의 번뇌를 씻어주는 것 같은 풍경소리만 있을 뿐이다. 창문 틈새로 비쳐드는 햇살이 법당 안으로 퍼진다. 연한 치자 빛 같은 햇살이다. 늘, 보아오던 햇살이건만 느낌이 다르다. 내가 그 햇살의 속살을 비집고 들어선 것 같다. 집에 두고 온 근심을 다 털어 놔도 그대로 맑은 속살이 될것 같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속세를 떠나 온 것 처럼 사그러 드는 향내음이 아득하다.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암석이란 광물질로 이루어진 모습이지만 그 위풍 당당함이 느껴진다. 연못 앞에 나그네를 위한 작은 나무의자가 있다. 나뭇잎을 떨궈 낸 빈가지로 서있는 나무가 경건해 보인다. 인연 따라 이 도량으로 와서 뿌리 내리고 산 햇수가 나보다 더 먼저 세상에 온 것 같다. 긴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들었을 부처님 법문을 속세에 사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텐데...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부처로 삼으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가슴을 열고 나온다. 맑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노스님 한 분이 연못주위를 산책하시기에 두 손을 모으고 합장으로 묵례를 드리니 스님께서도 묵례을 하신다. 티 없이 맑은 모습에서 수행자의 모습이 전해진다. 목에 두른 하얀 명주 목도리가 스님 미소처럼 고웁다.
멀리 앞으로 바라 뵈는 산이 짐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솔바람 소리가 청량하다. 자연 속에 오만 하지 않도록 겸손의 가르침을 준다. 내가 짊어 진 것을 다 내려 놓고 그대로 목석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잔잔히 목젖을 밀고 올라와 파동으로 이어진다. 세월이 주는 낡은 옷 한 벌의 의미를 두고 두고 숙제처럼 안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시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화두가 되어 스친다 "너는 무엇을 얻기 위해 이곳까지 왔느냐? 하는 물음에 순간 부끄러워졌다. 무엇을 얻기 위해 달려왔는지... 그토록 오고 싶었던 물음 하나가 산산 조각으로 부서졌다. 무엇을 위해 먼 길을 달려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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