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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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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9 22:40:05, 조회 : 644, 추천 : 137 |
습관처럼 아침TV뉴스를 켰더니 날씨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오후부터 중부지방으로 눈이 내린다며 주의운전을 하라는 멘트에
삼월에 눈이오면 얼마나 내릴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출근하는 남편 한테는 저녁에 눈이 내린다 하니 일찍 귀가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아침인사를 대신하고 날씨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렸다.
분주한 아침시간이 지나고 잠간 외출했다 돌아오는 전철역을 빠져나오니
눈발이 하나, 둘 흩날리기 시작했다. 난 그제서야 아침뉴스가 생각이 났다.
샤갈의 마을에만 춘삼월에 눈이 내리는 줄 알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삼월에 눈이 내리다니, 시인이 노래한 눈을 만난것 같아 즐거운 마음에
집까지 천천히 걷기시작했다.
집에 도착하는 사이 무우장다리 꽃처럼 흩날리던 눈송이는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 지척을 분간할수가 없게 내린다. 그새 골목길은 눈이 쌓여 내 발자욱이 뒤로
남으며 따라 온다. 내리다 그치 겠지 하며 거실 창 앞에서 수없는 사선을 그으며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니 나뭇가지가 하얀 꽃 가지로 금새 변한다. 창 안과
창 밖의 풍경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생각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빗자루을 들고 쓸어도 물기머금은 눈이라 뭉쳐지기만 할뿐 힘이 부쳐서 쓸어 낼수가 없어
포기 하고 말았다. 삽시간에 보이던 풍경들이 하얗게 변하고, 그 속에 감춰진
세상 일들을 탈색이라도 하듯이 하늘은 더 낮게 내려오며 시위를 하듯 쏟아 놓는다.
가로등 불빛 도 눈속에 묻혀버린 밤은 백년만의 특별한 만남을 21세기 전설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튼날 아침뉴스는 간밤의 평화로움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교통사고로 얼룩진 소식뿐이였다.
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집 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발목까지 푹푹 빠져 걸음이 뒤처진다.
은백으로 바뀐 세상은 침묵아닌 침묵으로 아침햇살도 조심스럽다.
문득 어린날의 하루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하셨던 아버지가 넘어오실 고개길을
가운데만 쓸어 놓으면 퇴근해 오시다 서너번은 넘어졌다며 공연히 옷자락을 털어내며 푸념 처럼 하시던 말이
떠올라 코 잔등이 시큰해진다. 언제나 한쪽 구두 뒷굽이 먼저 닳아서 새 창으로 갈아야 했던 일 그리고
눈위에 남던 발자욱은 한쪽발 모양이 비스듬해 아버지 모습을 안보고도 알수 있었던 일이다.
공원은 정갈한 하얀 세상이다. 나뭇가지는 산호꽃이 핀것 같아 바다속을 걷고 있는 착각이 든다.
이렇게 설레이게 아름다운 풍경을 몇번이나 만났을까? 표현할수 있는 그 어떤 언어도 거추장스러운것 같다.
공원아래 작은 사찰 담장위에 쌓인 눈이 뭇사람들의 염원같다. 5층석탑도 풍경도 춘설속에 잠들어있다.
오솔길처럼 쓸어놓은 길이 법당앞에서 멈추어 졌다. 댓돌위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고무신이 눈처럼 희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염불소리가 하얀나비처럼 날아다닌다. 하룻동안에 만나는 풍경이
아가페적 사랑처럼 느껴지는건 삼월에 만난 샤갈의 마을에 내린 눈 때문이였을까? 2004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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