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젬젬
|
2004-12-20 18:56:26, 조회 : 620, 추천 : 157 |
만찬이란 말을 생각하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했던 한 장의 그림이 떠오른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같이 하는 식사라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언제나 마지막이란 낱말은 마음속에 아픔을 동반한다.
더구나 `영원한 마지막`이란 생각에 미치면 아픔 때문에 가슴이 미어 질것만 같다.
얼마 전에 나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친정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어머니 모습은 살아오시면서 힘들 때마다 찍은 쉼표가 검버섯으로
얼굴에 피어 있다. 굵게 패인 주름은 어머니의 삶을 엿 볼수 있는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서걱이는 풀먹인 옥양목 저고리를 입으셨던 그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찿을 수가 없다.
이른 아침 텃밭을 돌아, 아침 찬을 마련하시던 그 활기는 어디로 갔는지. 어려웠던 세월의
이랑을 살아오신 어머니. 나도 어머니만큼의 세월을 안고 있을 때가 되면 저리 변하겠지.
이런 생각에 미치자 서글픔이 달려든다.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두레반상을 펴놓고 아버지와 함께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저녁식사는 찬은 없어도 정 담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한때였다.
색다른 반찬이 상에 오르는 날에도 명절이 되어도 어머니 자리는 늘 두레반상 한쪽 귀퉁이였다.
손님이 오셔서 상을 두 개 펴놓고 식사할 때도 어머니 자리는 마찬가지였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꼭 그만큼의 거리로 우리를 지켜 주셨다.
그만큼의 거리로 그림자처럼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의 바람막이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당신의 사랑을 그렇게 보여주셨다. 그런 내 어머니다.
큰오빠를 먼저 보내신 후로는 죄인처럼 가슴에 어머니만의 주홍글씨를 새겨 놓고
웃음을 잃었다. 이제는 식사도 제대로 못 드시는 걸 보면서 아려오는 슬픔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어머니는 밥수저를 내려놓았다. 더 드시라고 앞에 놓아드렷지만 손사레를
치며 뒤로 물러나셨다.
"너희들 먹는 모습만 바라봐도 나는 배가 부르다. 어서들 많이 들어라"며 채근만 하시던 어머니다.
아직도 우리는 어머니가 있는 아이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엄마는 가시고 우리는 고아가 될 거란 생각에 서글퍼진다.
결혼한 후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몇 번이나 함께 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도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나 살기 바쁘다고 혹은 나 아니여도
다른 형제들이 있으니까, 했던 것 같다.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나는 새는 물줄기처럼 다 잦아들게 했으니 후회와 죄스러움이 나를
짓누른다.
돌아오는 길이였다. 초저녁 하늘은 검게 어둠으로 물들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가슴이 죄어오는 것도 같고, 심장이 저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다. 노환으로 하루하루 다르게 변해 가는 어머니와 함께 한
저녁식사는 , 산그늘처럼 짙은 우울도 함께 했다.
옛날처럼 두레반상을 펴놓고 식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어머니 만을 위한 만찬을 차려 드리고 싶다.
2004년 여름호 수필춘추
추천인 서정범.정동화.이현복
심사평
김혜숙님의 응모작 (산책길에서 .만남의 기쁨 . 어머니의 만찬) 은 평범한 일상사를 제재로 한
개성적인 시각과 이를 의미화 한 인간적 심성이 드러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뜨거운 정을 형상화한 작품 "어머니의 만찬"을 추천작으로 선정함.
이 작품은 어머니에 대한 진지한 사모의 정을 유가의 선비적 사고로 잘 표현함.
어머니를 모신 저녁식사에서 "최후의만찬" 이란 명화를 연상한 이 작품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친정어머니와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창작의 동기로 함.
자칫 진부한 감상에 흐를 소재를 이성으로 소화해 낸 능력이 눈에 띔.
지난 시절 어머니의 모습과 지금 변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꼭 그만큼의
거리"에서 자식들의 바람막이로 사는 어머니 상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 상입니다.
그리고 큰오빠를 먼저 보내신 후의 어머니 삶을 연민과 회한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감상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 보답하지 못하는 작가의 심정은 자식된 모든 사람의 심정이라 봅니다.
이 작품이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것도 작가의 인간적인 면 때문이라 봅니다.
무리 없이 끌고 가는 문장력이 돋보입니다. 진솔한 삶의 표현을 통해 더욱 좋은 작품을 기대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