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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젬젬  2004-10-11 10:59:02, 조회 : 531, 추천 : 95

노란바람이 사르르 밀려와 리본이 풀린듯
하늘하늘 날린다. 엄마가 해주시던 호박단 저고리 그 빛보다
더 고웁다. 문득 현기증이 일어난다. 강가로 부서져 내리던 햇살의
눈부심이 그대로 따라 왔나보다. 심 한 몸살을 앓고 난 후 자꾸만
마른 입안으로 감겨들던 그 빛이다.

내가 살던 유년의 집 대문을 나서면 마당 건너편 집 담장에
장승처럼 서 있던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키도 훌쩍 큰 잘생긴 나무였다.
가을이면 기와지붕위로 쏟아져 내리던 은행잎은 여름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 만큼이나 황홀한 춤 을 추곤 했다.

나보다 네 살 위였던 언니와 할머니같은 엄마와 일꾼할아버지 셋 이서 살기엔
너무 큰 기와집은 언제나 침묵 속에 잠겨있었다. 뒤 울안 우물가에서
풍덩거리는 두레박 물깃는 소리와 아침 저녁으로 굴뚝으로 나오는 하얀 연기만이
세상밖으로 보내는 유일한 흔적 처럼 그 집은 언제나 적막감이 기와골 처럼 깊었다.

스무살 무렵이였던가.
덕수궁 현대 미술관에서 국전 전시회를 하던 시월의 어느날.
친구와 둘이서 전시회를 보고 난 후 덕수궁 뜰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을 보며 스무살 인생의 무게보다 더 큰 고민으로 우울해 했었던 기억들.
그 친구는 첫 사랑을 잃고 난 후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사랑을 잃어버린 참담함으로 우울하던 친구의 얼굴은 노란 은행잎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살면서 놓아버린 기억속에 창호지 문 틈 새로 들어오는 빛처럼
언제나 희망을 주고 몰락해버린 세월을 반추 해내는 그리움 또한
내 어린날을 알고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 였다.

언젠가 가본 용문사 은행나무나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는 스치는 한 부분의
풍경으로만 보여질 뿐이지 별다른 감흥이나 느낌은 뚜렷하게 남지를 않았다.

은행나무집에 대한 궁금증이 커 갈수록 난 그 집안을 들어갈 수
있는 날만 기다렸다 . 그 집엔 내가 알지못하는 이야기
가 서리 서리져 있을것 같고 우리와는 살아가는 방법조차
다를것만 같았기에 더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꽤 깊어가던 어느날,그 언니의 엄마가 멀리 출타를
가신날. 드디어 그 집 대문을 넘어 들어가 보았다.
대청마루엔 이층반닫이가 반들반들 윤이나고 뒤주 옆으로
나있는 마루문으로 게으른 햇살 한 줌이 스며들고 있었다.
마루끝까지 따라 들어온 햇살이 만들어 낸 긴 빛의 길은
그 집안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이리저리 굴절되고 꺽이면서
유일하게 어디든 편안하게 쉬었다 가는 나그네 처럼 느껴졌다.

마루 구석진곳에 자리한 엄청나게 큰 항아리를 본 순간
알수 없는 소름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던 그 순간의 전율같은 느낌을 난 잊을수가 없다.
그리고 격자무늬로 된 마루 벽장문은 얼마나 신비스러웠는지 모른다. 무엇을 더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있는건 아마 느낌이 강해서 였나 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은행나무 잎도 노랗게 물들어가면 가슴 한 켠에
자리한 어린날의 그 나무도 단풍이 든다 .



수메루
가을이 익는 깊이만큼
저 깊은 곳에 잠자던 아련한 기억들이
꾸역꾸역 목구멍을 팽창시키며 밀려 올라오는데
.......
여기도 또 그런 그림이 있네요
10-13
19:24:51



젬젬
다른계절이
가을처럼 이렇다면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입니다^^*

한계절만 있다는 소중함때문에
더 가을을 좋아하나 봅니다 ^*^
10-13
20: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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