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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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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18:59:24, 조회 : 609, 추천 : 146 |
사르락 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을날 바람 타는 낙엽소리 같은 빗소리를 숲속에 앉아 들어보기는 처음 이였다. 푸르게 일어선 나뭇잎들이 어서 오라는 듯 빗소리로 합창을 한다. 바람결 따라 흩어졌다 모이고 커졌다 작아지는 숲속의 푸른 음악회가 나 하나만을 위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하였다. 바람결에 흩어지면 그만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산도 내려와 내 옆에 있다. 빗소리와 하나된 침묵 아닌 침묵은 시간을 넘어 잠재해 있던 상념이 하나씩 빠져 나가고 기억의 맨 끝 자락에 있던 흑백사진 한 장이 어느새 살아 꿈틀거리며 시공을 초월 한채 넘나든다.
어릴적 자란 집은 창호지문 안쪽에 책받침만한 유리를 대어 방안에서도 안마당을 내다 볼수가 있었다. 비오는 날 초가집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는 빗방울의 떨림까지 그대로 전해주는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물풍선으로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그대로 물주름이 되어 퍼지기도 하고 항아리 속에서 일어나는 빗소리의 작은 축제는 비가 그칠때 까지 계속 이어졌다.
피란을 나와 우리집 에서 같이 살던 조서방 아제는 비가 내리는 날은 염전 둑 으로 짚으로 만든 우장을 쓰고 촘촘한 망태를 들고 참게를 잡으러 가곤 했다. 참게의 빠른 게걸음이 아제의 고단한 삶을 줄여 주기라도 하는지 아제는 비오는 날이면 염전둑 에서 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어쩌다 망태 그득하게 잡힌 참게를 지고 오면 고단한 삶의 두께 같았던 아제의 입가엔 보일 듯 말듯한 엷은 웃음이 베어 나왔다. 아제의 숙명 이였는지 장마철 비가 잠시 그친 사이 마당 위 텃밭 두렁 풀을 낫으로 베다가 쓰러져 빗소리에 묻히는 요령소리를 마지막으로 들려주며 아제의 고단했던 삶을 접고 우리집 과의 인연을 다하고 그렇게 떠났다.
어머니는 비만 내리면 커다란 항아리를 추녀 끝에 갔다 놓으셨다. 항아리 가득 담긴 빗물은 우리들이 머리를 감기도 하고 이불빨래를 하기도 했다. 옥양목 호청 을 삶아 빨래 줄에 널어 말리면 아릿하게 담기던 빛과 먹먹한 그리움 같은 엄마 품 냄새 같은 향기가 좋아서 때 탄다고 야단을 쳐도 장대 끝에 앉은 잠자리를 핑계 삼아 내 놀이는 멈추지를 앉았다. 풀먹인 호청 을 새로 꿰맨 날은 어머니의 잔잔한 행복도 함께 했을까.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가장 번거롭고 힘든 것이 이불빨래 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비가 오면 우산을 갖고 교실문 앞에서 기다리면 아이가 그렇게 좋아했다. 책가방을 받아 들고 같이 걸으며 들려주는 아이의 이야기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 즐거움은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서 같이 끝이 나긴 했지만.... 비가 오는날 날 위해 가족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려준 적이 없었다. 이슬비든 장대 같은 소낙비든 고스란히 흠 벅 맞고 집으로 돌아 올적엔 축축하게 젖은 옷이 내인생의 끈끈한 무엇을 담고 있는지 온몸을 휘감아들던 별루 유쾌하지 못한 느낌은 간혹 내게 일어나는 근심이 있을때 마다 같이 되살아나곤 한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댁 뒤울안 대숲에서 들려주던 빗소리와 한데 어우러진 바람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흑인 연가처럼 내 가슴속으로 젖어 들던 그 전율 같았던 떨림과 차르륵 거리며 세월을 씻어내는소리 같았던 쓸쓸한 대숲의 흔들림은 추억 하는 것 조차 쓸쓸해진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숲속은 촉촉하게 세수를 하고 . 내기억 의 물길을 낸 듯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을 건져 올리는 두레박이 되어 하나씩 펼쳐 놓았다.
200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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