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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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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18:48:23, 조회 : 571, 추천 : 131 |
사남매의 막내로 자란 난 오빠들과의 추억거리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흑백으로 남아있다. 나이차이가 많이나기도 하고 내가 어릴때 집을떠나
객지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방학때나 돼야 오빠들 얼굴을 볼수 있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떠났으니 뚜렷한 그림을
그려낼수가 없는 것이 더 많다.
방학을 하면 학생복을 입고 집으로 오는 오빠들이 참 멋있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날부터 난 특별과외가 시작되기도 해서 어서 방학이 끝나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도
갖고있었다. 산수문제 하나만 틀려도 대자로 손바닥을 맞아야 했으니 보고싶었던 마음
못지않게 오빠들이 밉기도 했다. 엄마는 무조건 오빠들 편이라 내가 일러바쳐도 소용 없고
퇴근해 오시는 아버지께 귓속말로 일러바치면 빙그레 웃으시기만 할뿐 였다.
큰오빠는 스케이트를 무척이나 잘탔다. 검은 비로드잠바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은색으로 빛나는
스케이트를 메고 집을나서서 연못쪽으로 내려가는 오빠의 뒷모습은 그당시엔 근사한 멋쟁이였다.
꽁꽁언 연못위을 미끄러지듯 이리저리 돌기도 하고 앞으로가다 뒤로가기도 하는걸보면 제비가
물살을 가르며 날아오르는것처럼 보여져 연못이 내려다 보이는 집언덕에서 엄마를 불러내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탈수 잇는건 수수깡을 발로밟고 쪼그려앉아서 밀치기하는것과 엉성하게 만든썰매를
타는것 뿐이였지만 한번도 오빠가 스케이트 타러갈때 따라간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큰오빠가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다. 그 반대로 오빠는 공대가길원했고.... 의견이 맞지않아
오빠와 아버지는 한동안 서먹하게 지냈고 아버지는 집에못오게하는 금지령을 내리기도하셨다.
큰오빠는 손재주가 많아서 그당시 라듸오가 귀하던 때 였는데도 부속품사다가 직접 트렌지스터 라듸오를 만들기도 하고 아버지가 아끼던 축음기를 분해하기도 해서 크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 라듸오덕에 저녁이면 사랑방으로 동네사람들이 연속극 들으러 모이기도 해서 한겨울이면 엄마는 밤참을 만들어 내 가기도 하셨다.
둘째오빠는 초등학교때부터 줄곳 일등만 하고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A코스만 다녔다. 대학도 S대를 들어가서 아버지의 자존심을 한것 세워드렸다. 면내에서 처음으로 S대를 들어갔으니 큰댁은 물론 온 집안이 무슨 경사라도 난듯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아버지는 축하를 받으시며 그 봄 내내
축하주를 내시기에 바쁘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바라던 대학입학을 했지만 아버지의 병환은 이미
깊어질때로 깊어져 치유가 불가능해진 상태였고 오빠가 대학2학년 봄에 졸업하는것도 못보시고
먼 ㅡ 여행길로 떠나셨다.
오빠들이 자취할때 엄마는 가끔씩 반찬가지고 다녀오시면 마음이 짠하신지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우리들이 어서커서 오빠들과 같이 생활하기만 바라셨지만 밥이라도 할줄알게 되였을때는 오빠들은 이미 성인이 되였고 언니나 나는 단발머리가 시작될 무렵이였다.
둘째오빠가 휴학을 하고 군입대를 한후 월남에서 편지가 왔을때 장독대에서 엄마는 이른새벽이면 사기주발에 정한수떠서 소반에 놓고 엄마만의 기도를 시작하는 하루 하루가 되였다.
주월사령부 행정과에서 군무를 했건만 남의나라 전쟁터로 나간 아들걱정으로 한순간인들 편안하게 보내셨을까. 우체부가 지나가기만 해도 안부를 묻고 편지 잘 전해달라는 말로 당신의 외로운 기도를
그렇게 위안삼으셨는지도 .....
오빠가 복학을 하면서 나와 같이 자취를 할때는 학교가 멀다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주말마다
집에 오는날이면 가방엔 빨래거리를 가득담아오곤하였다. 친구들 빨래까지 가져왔으니 난 주말오는것이 너무 싫기도 했고 오빠한테 제발 오빠빨래만 가져오라면 알았다는 대답만 할뿐. 그다음에도
가방엔 내손길을 기다리는 빨래는 언제나 가득했다.
짓굿게 날 따라다니는 머슴아들을 혼내주기도 하고 좋은책을 읽으라며 권해주기도 하고 볼만한 영화를 알려주기도 했다. 졸업할무렵 취직을 했고 첫월급 받던날 투피스한벌과 근사한 음식점에가서
저녁을 함께 먹은 기억은 다 낡은 책장을 들춰보는것 처럼 마음이 아려온다.
오래된 책속의 삽화처럼 내가 기억하는 오빠들과의 추억은 반쯤은 지워지고 반은 선명하게 남은 그림이 되어 책상서랍속 보물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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